이번 205호에는 자랑스러운 서울여자간호대학교 동문을 소개하는 ‘서간 人’ 코너를 연재했다. 정혜원 동문(20학번)은 졸업 후 용인 소재 2차병원 내과 병동에서 약 4개월간 근무 후 2024년 10월에 이스타항공에 입사하여 현재는 객실 승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는 2024년 3월부터 간호사로 근무했습니다. 마침 그 시기가 의료파업과 맞물리면서 병동 업무량과 중증도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중증 환자 간호를 맡게 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부담을 느꼈고, 건강에도 무리가 왔습니다. 그럼에도 환자들과 소통하며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는 과정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저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환자분들도 저를 아껴주셔서 친절간호사에 여러 차례 선정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제 미소가 타인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서비스직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떠올랐고, 공감과 서비스 능력을 살릴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라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새 환경에서는 ‘관찰’과 ‘겸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많이 듣고, 메모하고,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정리한 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고, 질문을 주저하지 않으면서 열린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선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보다는 ‘실수하더라도 계속 배우고 발전하고자 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직무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합니다. 항공사별 승무원 채용 공고를 분석하면서 필요한 역량과 이미지, 자격 요건을 꼼꼼히 파악했습니다. 특히 서비스 마인드, 팀워크, 안전역량 등 각 항공사가 추구하는 핵심가치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 메이킹 스터디에도 참여했습니다. 영어, 일본어 등 제2외국어 실력도 꾸준히 다듬었습니다. 간호사 경력도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면접에서의 스토리텔링 준비도 많이 했습니다.
간호사 시절엔 매 순간 판단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됐기 때문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 승무원은 기본적으로 서비스 직무지만, 비상 상황에는 안전과 구조 업무도 포함되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업무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밝고 유연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위기 대응 능력’과 ‘침착함’입니다. 병원에서는 언제든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늘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경험 덕분에 비행 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환자와의 소통을 통해 익힌 공감 능력은 다양한 승객을 응대할 때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중거리 비행 중에 자율신경장애를 가지고 계시던 승객이 탑승한 적이 있습니다. 온습도, 기압, 수면, 빛, 소음 등의 외부 자극에 뇌의 민감도가 올라가면서 호흡곤란을 심각하게 호소하셨습니다. 저는 승객께서 호흡곤란을 호소한 즉시 기내구급키트와 PO2bottle을 사용하여 환자를 간호했습니다. 다행히 산소를 공급해 호흡이 안정됐고, 상태가 호전되어 비행 내내 큰 무리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착륙 후에도 승객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병원은 3교대 근무라 생활 리듬을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휴일도 불규칙해서 개인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항공사 승무원 스케줄은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비행 후에는 비교적 긴 휴식시간이 주어집니다. 물론 시차나 체력 소모는 있지만, 워라밸 측면에서는 현재가 더 만족스럽습니다.
간호사의 ‘돌봄’은 아주 깊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신체적, 정서적으로 밀착된 케어가 필요합니다. 반면 승무원의 돌봄은 짧은 시간 안에 신뢰를 주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서비스 중심입니다. 깊이보다는 넓은 범위의 공감과 빠른 감정 교류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공통점은 ‘관찰력’과 ‘상황 대처 능력’입니다. 간호사로서 환자의 상태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던 경험은 승객의 컨디션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면, 예상외로 연관이 적었던 부분은 ‘업무 환경’입니다. 병원은 팀 단위로 긴 시간 함께 일하지만, 승무원은 매 비행마다 새로운 팀과 함께 움직이는 구조라 처음엔 그 유동성이 낯설었습니다.
간호사와 승무원 모두 돌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침착함과 매뉴얼에 따른 대응입니다. 간호사 시절에는 응급상황에서 병원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빠르게 우선순위를 판단하고 직접 조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승무원으로서는 비상 상황 시 팀과 함께 매뉴얼에 따라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간호사와 승무원으로 활약하며 누구보다 다양한 현장을 경험해 온 정혜원 동문은 위기 상황에서 팀워크와 매뉴얼이 생명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조언했다. 후배들을 위해 진심 어린 조언을 들려준 정혜원 동문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