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호] 한국 영화 속 여성 서사, 백델 테스트로 본 현주소

출처: Michael Sharkey

벡델 테스트의 탄생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만화 속 한 장면에서 시작됐다. 이 테스트가 요구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명 이상 등장할 것 ▲그 여성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이 여성들의 대화 주제가 남성에 관한 것만이 아닐 것. 이들은 꽤 간단한 조건처럼 보이지만, 한국 영화계는 2010년대까지도 이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영화가 드물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2020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후원 아래에서 ‘벡델 데이’를 개최하며 영화 속 성평등 반영을 돌아보고, 기존의 세 가지 기준이 양성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점을 고려해 네 가지 기준을 추가했다.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역할과 비중이 동등할 것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인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이렇게 기존의 세 가지 기준과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추가한 네 가지 기준을 합쳐, 현재까지 일곱 가지의 벡델 테스트 문항들은 실질적인 영화 속 성평등을 점검하는 기준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한국 영화 속 여성 서사의 현주소
벡델 테스트를 통해 한국 영화 산업을 살펴봤을 때, 최근 몇 년간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 영화 수가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 영화 성인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흥행 영화 순위 30위 안에 든 작품 중 27편의 조사 대상 가운데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16편으로, 59.3%를 차지하면서 역대 가장 높은 기록을 세웠다. 또한 감독, 제작자, 프로듀서, 주연, 각본가 등 핵심 창작 인력 전반적인 부분에서 여성 비율이 증가했으며, 특히 여성 주연 배우는 91명으로 전체의 48.1%를 차지해 전년 대비 7.4%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여성 캐릭터의 복합성을 평가하는 ‘스테레오 타입 테스트’에서는 조사 대상 영화 중 44.4%가 여전히 여성 캐릭터를 정형화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테스트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묘사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되며, 예컨대 ‘여성이 전적으로 남성의 구출 혹은 구원에 의지하는가?’, ‘여성이 거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구색 맞추기나 감초로 기능하는가?’, ‘여성이 일차원적 이성애 로맨스의 대상으로만 기능하는가?’, ‘자기 서사 없이 (범죄 등의) 피해자로만 전시되는 여성이 존재하는가?’ 등의 문항으로 캐릭터를 파악한다.

또한 장애인, 성소수자, 다양한 인종·국적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 대부분이 조연이나 단역으로만 등장하며, 상업 영화 시장에서는 ‘남성 감독-남성 주연’ 작품이 여전히 81.3% 비율을 차지했다. 촬영 감독의 경우에도 여성 인력이 최근 3년간 10%보다 낮게 머물거나 간신히 10%를 넘는 수준에 그치는 등 성비 불균형 문제가 여전히 존재했다. 이처럼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도 성비 불균형 문제는 한국 영화 산업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벡델 테스트가 던지는 의미, 그리고 남은 과제
벡델 테스트는 영화 속 여성의 존재와 역할을 점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으며,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도 이러한 기준이 점차 반영되면서 스크린 속 여성의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더라도, 실제로는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여전히 정형화된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 또한, 여성이 연출했더라도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작품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 테스트만으로 성평등을 완전히 대표하거나 여성 서사를 정확히 보여 주는 기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세 가지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영화는 여전히 존재하며, 영화 외부에서의 여성 인력 비율 등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성별 불평등은 벡델 테스트의 존재 이유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크린 속의 여성 캐릭터가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 있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화 산업 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별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며, 벡델 테스트는 이러한 변화를 촉진시키는 도구로써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김채현 수습기자 kchchbb@naver.com

[참고]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40826.22022007066
https://www.kofic.or.kr/kofic/business/board/selectBoardDetail.do?boardNumber=181&boardSeqNumber=68181#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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