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호] 낯선 땅 미국에서 임상과 학계를 넘나들며 성과를 이룬 손지명 동문의 이야기

자랑스러운 서울여자간호대학교 동문을 소개하는 ‘서간 人’ 코너. 이번 207호에 소개할 05학번 손지명 동문은 2008년 졸업 후 현재 미국 뉴욕 North Shore University Hospital 간이식내과에서 Nurse Practitioner로 근무 중이다. 2024년에는 미국간학회(AASLD)에서 Emerging Liver Advanced Practice Provider Award를 수상하며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서울여자간호대학교 해외 동문 협력 이사와 뉴욕한인간호사협회 컨퍼런스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한인 간호사 네트워크 발전과 동문 간 교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손지명 동문

대학을 졸업하고 신규 간호사로 임상에 들어갔을 때, 조직 문화와 시스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내부는 이미 고착화되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바꾸기 어려웠고, 보다 합리적인 체계 속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결국 미국에서의 새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 간호계를 부정적으로만 보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경력을 밑거름 삼아 더 다양한 환경에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며 배움을 얻고,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며 아직도 나아가는 중입니다.

제가 미국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이곳이 노력에 대한 보상이 비교적 분명한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타국에서 자리를 잡고 일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성실함과 실력이 있다면 그것이 곧 새로운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도 제가 미국 생활을 이어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상태에서 낯선 문화와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새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좌절을 동반합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순간도 있고,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는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냥 주저앉아있기보다는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결국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AASLD에서 B형 간염 관련 활동에 참여하고 있어서, 요즘은 B형 간염 분야의 새로운 치료제 개발과 임상 연구 흐름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바이러스 억제를 중심으로 한 치료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기능적 완치를 목표로 하는 접근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항바이러스 치료뿐 아니라 immunologic approach, biomarkers, quantitative HBsAg 같은 요소들도 점점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AASLD 교육에서는 HBV 환자의 fibrosis를 비침습적으로 평가하는 방법, HBV와 MASLD가 함께 있는 환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같은 주제들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앞으로의 B형 간염 진료는 더 정밀하고 개별화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환자분이 진료 후 ‘이제야 내 상태를 알겠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해가 되었다’고 말씀하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간 질환은 경과가 길고 복잡한 경우가 많아 막연한 불안을 가지고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설명을 통해 그 불안이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이해로 바뀌는 순간, 저를 향한 환자분들의 신뢰가 피어납니다. 의료진에게 믿음을 갖고 치료 계획에 보다 적극적으로 따라와 주실 때,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전문 용어를 최대한 줄이고, 환자분이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언어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이 저의 노하우입니다. 예를 들어 지방간염을 이야기할 때도 의학적인 표현을 그대로 쓰기보다는, 지방이 오래 쌓이면 염증이 생기고, 결국 간에 상처가 날 수 있다고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가면역 간염도 면역체계는 원래는 몸을 지켜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자기 간을 적으로 오해하고 공격하는 상태라고 설명하면 환자분이나 보호자분들이 훨씬 쉽게 받아들이시게 됩니다. 결국 교육은 환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확하게 전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RN과 NP 모두 역할과 전문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범위와 깊이라고 생각합니다. RN으로 일할 때도 빠른 환자 상태 파악과 적절한 대응, 그에 따른 책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NP가 되면 그 판단이 진단적 사고와 치료 방향 결정까지 훨씬 넓어집니다. 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 어떤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봐야 하는지, 어떤 검사와 치료가 적절한지를 스스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권한이 넓어진 만큼 책임감도 훨씬 무겁고, 결국 지속적인 공부와 자기 점검이 필수라는 걸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가장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적극성입니다. 특히 미래가 기대되는 학생들은 모르는 것을 감추기보다 솔직하게 질문하고, 기회가 왔을 때 뒤로 물러서기보다 일단 시도해 보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리셉터 입장에서도 배우려는 의지가 분명하고, 스스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학생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합니다. 결국 성장하는 학생들은 실력 이전에 태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저는 이런 외부 활동이 간호사의 시야를 넓혀준다고 생각합니다. 임상 경험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가 속한 시스템 밖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더 큰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반면 학회나 교육,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서는 다른 기관의 실무 방식, 최신 지견, 리더십, 정책적인 시각까지 함께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보게 되고, 간호사로서의 역할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활동이 임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 차원에서 보면, 실습과 교육 두 측면에서 모두 보완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실습 측면에서는 학교 교육과 실제 임상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순히 관찰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경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환자 상태를 해석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실질적인 멘토십과 훈련이 더 강화되면 좋겠습니다. 교육 측면에서는 리서치, 리더십, 문제 해결 역량을 좀 더 체계적으로 키워주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스스로를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춘 인력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현재 뉴욕한인간호사협회에서 Conference Coordinator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매년 열리는 학술대회와 여러 온라인 교육 세션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기획, 조율, 커뮤니케이션 등 실무적인 부분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해외 한인 간호사 네트워크는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세대와 경험을 연결하는 성장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는 후배에게 방향과 현실적인 조언을 줄 수 있고, 후배는 선배에게 새로운 시각과 변화하는 흐름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에서의 교육과 경험, 해외에서의 실무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함께 연결되면,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간호계 전체에도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좋은 네트워크는 서로를 더 성장하게 만드는 구조여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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