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서울여자간호대학교 동문을 소개하는 ‘서간 人’ 코너. 이번 207호에 소개할 91학번 백부금 동문은 1994년 졸업 후 가톨릭대학교 성바오로병원 수술실 UM,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수술물류 Unit UM,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중앙공급실 UM,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62병동 UM을 거쳤다. 현재는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고객행복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직장과 병행해 광운대학교 상담복지정책대학원 심리치료학 석사를 취득했다.

매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수술실 간호사 업무를 하며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환자가 가장 나약할 때 내 작은 눈빛과 손길이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됨을 느끼는 시간들은 큰 보람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것들이 내가 간호사로서 받는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병동에서 환자들의 회복 과정에 함께하는 시간은 매 순간 ‘내가 간호사구나’를 오감으로 느끼게 해 주는 순간들이었고, 또 다른 행복이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릅니다. 처음 수술실에 입사했을 당시에는 2년 정도 근무한 뒤 퇴직할 생각이었습니다. 업무를 익히고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나의 업무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기쁨과 성장의 기회를 경험하며 점차 일에 대한 보람으로 이어졌습니다. 모든 시간들은 절대 헛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늘의 어려움이 내일의 노하우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근속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시작 시점의 기대를 중심에 두고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막막함만 있던 시점에서 차츰 무언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입 간호사들은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호사로서 보람을 느끼고 자긍심을 갖기 위해서는 ‘당당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당함의 첫 번째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설명을 들었음에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민폐가 될까 봐 되묻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마음의 갈등은 충분히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질문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일 거야’, ‘~겠지!’라는 막연한 나의 믿음은 무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서로 다른 내용을 염두에 둔 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헤아림, 즉,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가슴에 새기고 간호 현장에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짜증과 피로로만 시간을 보낼지, 혹은 고단함 속에서도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에너지원이 될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됩니다. 간호사의 공감은 대상자에게 친절로 전달되고, 결국에는 간호사의 가치로 표현되며, 곧 자신의 품격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은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처럼 단번에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은 여러분이 전문가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입니다. 즉, 반복되는 시행착오 속에서 본인이 숙련도를 높여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현재의 부족함을 자책하며 정체하기보다는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시간에 맞춰 나를 다독이고, 얼마나 멋진 간호사가 되어 있을지를 상상하며 오늘 하루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졸업 후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현실적인 차이는 매우 컸습니다.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질병 중심으로 학습하던 것에서 사람 중심의 돌봄으로 전환된다는 점입니다. 같은 진단명이라 하더라도 환자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 간호의 방향이 달라지며, 근거 기반 간호 계획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환자의 정서적 케어에 상당한 비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매뉴얼적인 술기보다 상황에 따른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도 현실적인 차이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수술 간호: 고도의 멸균 상태 유지, 해부학적 지식과 수술 장비에 대한 전문성 요구, 타 직종과 긴밀한 협업이 이루어지는 업무 공간입니다.
– 장점: 환자와의 정서적 소통(컴플레인 등)에 대한 에너지 소모가 적고, 업무 범위가 명확합니다. 수술이 끝나면 해당 업무가 완결된다는 성취감이 큽니다.
– 단점: 장시간 서서 근무해야 하는 신체적 고충이 크며, 응급수술로 인한 On-call(대기) 근무 부담이 있습니다. 수술 중 예민한 분위기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합니다.
2) 수술 물류: 수술에 필요한 각종 소모품, 임플란트, 수술 기구 등을 적시에 공급하고 관리하는 수술실의 혈류 역할을 합니다.
– 장점: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아 감정 노동이 적습니다. 병원 경영의 효율성을 숫자로 확인하며 전문성을 쌓을 수 있습니다.
– 단점: 물품 결손이나 공급 차질 발생 시 수술실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상시 긴장도가 높습니다. 수술 기구 등의 물품 공급 및 정리 등 육체적 활동이 수반됩니다.
3) 중앙공급실: 병원의(수술실 제외) 모든 의료 기구 수거, 세척, 멸균하여 공급하는 감염 관리의 심장부로 멸균 표준 지침 준수가 절대적입니다.
– 장점: 업무 루틴이 비교적 일정하며 독자적인 공간에서 집중도 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환자 또는 보호자와의 접점이 없어 대인 관계 스트레스가 적은 편입니다.
– 단점: 세척 및 멸균 기계에서 발생하는 열기, 습기, 소음 등에 노출됩니다. 단순 반복 작업이 많아 보람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병원 내에서 조명받기 힘든 숨은 조력자의 위치입니다.
4) 산부인과 병동: 새로운 생명의 탄생부터 부인과 질환의 치유까지 여성의 전 생애주기를 다루는 곳입니다. 분만(L&D)과 병동 간호가 공존하며, 출산과 같은 행복한 이벤트가 있는 반면, 힘든 상황도 있을 수 있는 감정적 스펙트럼이 넓은 곳입니다.
– 장점: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습니다. 여성 건강에 대한 깊은 전문성을 쌓을 수 있어 커리어 확장에 유리합니다.
– 단점: 산모와 신생아라는 두 대상자를 동시에 케어해야 하는 책임감이 막중합니다. 특히 보호자들의 기대치가 높고 예민하여 세심한 감정적 케어가 필수적입니다.
5) 고객행복팀: 환자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와 나갈 때까지의 모든 경험을 설계하고, 민원을 관리합니다. 병원 서비스 디자인, 친절 교육, 민원 응대, 지표 관리(NCSI, 환자 경험 평가 등)를 담당하는 행정 부서입니다.
– 장점: 병원 전체의 시스템을 조망하는 시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캠페인을 기획하고 조직 문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 단점: 강성 민원 응대 시 극심한 감정 노동을 겪습니다. 임상 현장과 행정 마인드 사이의 간극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부서 간 갈등의 중심에 서기도 합니다.
수술실 신규로 입사했을 때, 업무의 미숙함에서 왔던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술실에서는 수술의 기본적인 절차를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매일 수술별, 교수별 준비 물품과 절차, 특징 및 차이를 정리했습니다. 동일한 수술만 반복해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과의 수술이나 당직 근무 시 다양한 수술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러한 정리 노트를 사전 학습에 유용하게 활용했습니다. 또한 수술실과 수술 물류, 중앙공급실에서의 업무는 세척, 소독, 멸균 지침이 병원 전체 감염관리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관련 최신 지침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현장에 적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개선하는 데에도 꾸준히 힘을 썼습니다.
대학원 진학 당시 수술실 간호사 업무와 체외순환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어 응급 수술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고, 그로 인해 학업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해 시간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전공을 선택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평소 인문학과 인간 심리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점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심리치료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심리치료학을 전공하면서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의 깊이도 한층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통합적인 시야를 키우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술실 간호사의 업무는 빠른 판단력과 상황에 따른 응용력이 요구되는 정밀하고 전문적인 업무입니다. 감염관리를 위한 무균술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솔직한 기준을 적용하는 태도, 다양한 직군과의 정확한 의사소통과 팀워크, 수술 기구와 장비를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안전 관리 역량 등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이 지침과 기준에 맞게 수행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세심한 집중력이 중요합니다.
규정 준수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보이지 않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수술이 몰리고 현장에서 기구 부족을 호소할 때 드는 가장 큰 유혹은, 멸균 시간을 단축하거나 건조 과정을 생략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일회용품을 개봉만 하고 사용하지 않았다며 재멸균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현장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쁠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는 기준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구역 간 일방통행 원칙을 준수하고, 지침에 따른 표지자 검증을 철저히 했으며, 세척 또한 멸균의 첫 단계라는 인식을 부서원들과 공유하고자 지속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저 역시 그 무게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부서를 거친 33년의 임상은 고객행복팀장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첫 번째로, 현장의 고충을 반영해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수술실과 병동의 업무 강도를 알기에, 간호사가 환자에게 한 번 더 웃어주는 데에도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 이해합니다. 따라서 의료진에게 무리한 친절을 강요하기보다, 의료진의 업무 동선을 줄이거나 효율을 높여 자연스럽게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제안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보이지 않는 곳의 가치를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중앙공급실에서의 엄격한 멸균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까지도 이렇게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환자에게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이는 병원에 대한 깊은 신뢰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부서 간의 칸막이를 허무는 소통의 가교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여러 부서를 거친 덕분에 각 부서의 언어와 생리를 볼 수 있고, 진료부, 간호부, 행정부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때 환자의 관점에서 이 과정이 왜 필요한지를 각 부서의 입장에 맞춰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병원 전체의 시스템적 혁신을 이끄는 힘이 됩니다.
고객행복팀장은 첫 번째로 병원의 환자 경험 총괄 설계자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환자가 병원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겪는 모든 접점을 분석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 고객의 소리를 통해 단순 민원 처리를 넘어, 환자들의 목소리 이면에 숨겨진 병원 시스템의 결함을 찾아내고 유관 부서와 협력하여 개선합니다.
두 번째로 서비스 디자인 및 캠페인 기획 업무도 맡고 있습니다. 병원 내 딱딱한 문화를 MZ세대부터 고령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트렌디하고 따뜻한 소통 방식으로 바꾸는 캠페인을 주도합니다.
마지막으로 환자 경험 평가나 만족도 지표를 관리하며, 현장 접점 직원들이 전문성과 따뜻함을 동시에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동기를 부여합니다.
33년 전, 저에게 간호는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지금의 저에게 간호는 환자의 삶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는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기술로 시작해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는 이 변화는 지난 33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수술실에서의 첫 근무 시절에는 실수하지 않는 손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환자의 떨리는 손등을 한 번 더 잡아주는 것이 얼마나 큰 치유의 힘이 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간호사의 전문성은 완벽한 술기에서 시작되지만, 그 완성은 환자의 불안을 읽어내는 공감의 시선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원은 질병을 치료하는 공간으로만 봐야 할 장소가 아닙니다. 병원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한 페이지가 쓰이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환자가 병원을 나설 때 존중받았고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는 긍정적인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